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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간과 지지] 1편 : 의식과 무의식

by Argo Navis 2025. 5. 25.

안녕하세요,

사주를 본다는 건 운의 좋고 나쁨에 앞서 먼저 '나'라는 존재와 마주하는 일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의지,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감정과 습관을 우리는 당연히 하나의 '나'로 여기지만, 
실제로는 놀라울 만큼 다르게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왜 매번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방식으로만 반응할까?”
“왜 어떤 관계에서는 나답지 않게 행동할까?”

이 질문은 겉의 나와 속의 나, 즉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의 어긋남에서 시작됩니다.


[천간 : 내가 설명하는 나, 보여지는 나]
천간은 겉으로 드러난 자아입니다.
우리가 사회 속에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보여주고 싶은 모습, 말투, 태도입니다.
신경과학적으로는 전두엽의 기능과 닮아 있습니다. 판단하고, 조정하고, 계획하는 영역이죠.
천간은 결국 외부에 보여주는 페르소나, 즉 스스로 만든 '설명 가능한 나'입니다.



이 기능이 단단해질수록 '나'는 명확해지지만, 때로는 그만큼 내면의 실제 감정과 멀어질 수 있습니다. 

[지지 : 무의식의 뿌리, 감정, 기억, 그리고 익숙한 나]
지지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몸이 먼저 반응하고, 감정이 움직이며, 익숙한 방식으로 습관을 반복할 뿐입니다. 
이는 해마와 편도체, 기저핵과 같은 뇌 깊숙한 시스템과 닮아 있습니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영역입니다.

신경과학자 벤자민 리벳의 실험은 우리가 '결정했다'고 느끼기 약 0.3초 전에
이미 뇌에서 행동 준비 신호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의식적으로 결정했다고 생각하는 순간보다 뇌는 이미 먼저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지 역시 내가 의식적으로 말하기도 전에 이미 작동하고 있는 ‘나’의 반응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천간이 “이쪽이 맞아”라고 말할 때, 지지는 “이미 난 이쪽에 있어”라고 반응합니다. 
우리가 내린 수많은 결정들 중 많은 부분은 사실 이미 지지라는 무의식의 길 위에서 정해져 있을 수 있습니다.


[아뢰야식 : 설명되지 않는 나의 바닥]
이 무의식의 뿌리는 불교의 유식사상에서 말하는 아뢰야식(阿賴耶識)과 닮아 있습니다.
아뢰야식은 의식되지 않은 기억과 감정, 습관과 성향이 층층이 쌓여 있는 공간입니다.
내가 “이건 그냥 내 성격이야”라고 생각했던 행동들, 사실은 아주 오랜 시간 반복되어온 패턴일 수 있습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를 암묵기억이나 정서기억과 연결해 설명합니다. 
해마, 소뇌, 편도체에서 관리되는 이런 기억들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행동을 이끌어 갑니다.

지지는 바로 이 아뢰야식의 표면입니다. 
늘 반복되는 감정의 루프, 익숙한 패턴, 설명되지 않는 이끌림은 모두 지지에 담겨 있습니다.

[천간과 지지]
천간과 지지는 서로 다른 언어를 씁니다.
하나는 말을 하고, 하나는 반응합니다.
하나는 선택이라 믿고, 하나는 이미 익숙한 길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주를 본다는 건 이 둘 사이의 간격을 확인하고, 그 어긋남에서 생기는 반복을 조금씩 바꾸어나가는 작업입니다.
천간이 말하는 방향과 지지가 반응하는 흐름이 일치할 때, 
우리는 억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가는 삶에 가까워집니다.

[병자일주, 을묘일주]


예시 1. 병자일주
 - 천간 병화: 밝고 외향적인 표현,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경향
 - 지지 자수: 차갑고 방어적인 감정, 통제된 감성

병자일주는 겉으로는 따뜻하고 명확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똑 부러지게 말하고, 리더십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내면에서는 쉽게 상처받고,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데 조심스러우며, 
때로는 타인을 차갑게 밀어내는 반응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옵니다.

천간 병화는 '나는 열정적인 사람이야' 라고 말하지만,
지지 자수는 '감정을 쉽게 내보이면 위험해'라고 속삭입니다.
이 간극이 커질수록 삶은 피로하고, 관계는 오해로 뒤덮일 수 있습니다.


예시 2. 을유일주
  - 천간 을목 : 부드럽고 유연한 태도, 타인과 조화 추구
  - 지지 유금 : 날카로운 기준, 미세한 평가, 내면의 통제 욕구

을유일주는 늘 다정하고 친화적인 인상을 줍니다.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고, 듣는 자세가 돋보입니다다.
하지만 내면에서는 판단이 빠르고 냉정하며, 타인의 허점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상대가 느끼는 거리감은 을목이 아닌 유금 때문입니다.

겉은 '당신을 이해해요'라고 말하지만,
속은 '하지만 나의 기준과는 다르네요'라고 조용히 선을 긋고 있는 셈입니다.


[메모]
사주는 결국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질문을 넘어 ‘나는 어떤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으며, 
그 패턴을 어디서부터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힌트를 주는 도구입니다. 
천간과 지지가 서로 만나는 지점을 정확히 바라볼 때, 
비로소 삶은 익숙한 반복에서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