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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by Argo Navis 2025. 8. 31.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릴 적 읽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단편소설 속에서
하느님이 미하일에게 내린 이 세 가지 질문은 저의 마음속에도 오래도록 남아있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문득 이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톨스토이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의 마음에는 사랑이 있다.”
톨스토이는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근본적인 힘으로 사랑을 말합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은 무의식 속에는 욕망, 상처, 방어 기제가 얽혀 있으며 랑조차도 때로는 그 방어의 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내면에는 욕망, 두려움, 책임,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있으며,
사랑은 그 가운데 하나로 드러나기도 하고 모든 작용의 바탕에 숨어 있기도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 없는 이유입니다.

명리학은 이 복잡한 마음을 오행(五行)과 십성(十星)으로 풀어냅니다.
즉, 마음을 감정의 순간적 파동이 아니라, 삶을 버티고 이끌어 나가는 다섯 가지 구조적 힘으로 봅니다.
   - 식상 : 표현하고 창조하며, 내 안의 것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힘
   - 재성 : 소유하고 싶은 것을 획득하고 현실을 운영하며, 삶을 구체화하는 힘
   - 관성 : 질서와 책임을 받아들이며, 사회 속에서 방향을 잡는 힘
   - 인성 : 배우고 이해하며, 내면을 회복하는 힘
   - 비겁 : 나 자신을 지키고, 남들과 더불어 살아내는 힘

이 다섯 가지는 길흉을 가르는 단순한 기운이 아니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하고 조율하는 내면의 운동성입니다.
즉, 명리학에서 마음이란 곧 삶을 운용하려는 의지의 방향이 됩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욕망도, 두려움도, 책임도 있습니다.
어쩌면 톨스토이 가 말한 사랑은, 바로 이 다섯 가지 힘이 균형을 이루고 순환할 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2.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톨스토이는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것이다.”
신은 천사의 오만을 꺾기 위해 인간 세상에 내려보냅니다.
그는 사람들 곁에서 직접 삶을 겪으며 깨닫습니다.
사람은 스스로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
그 깨달음이 바로 ‘자비’이며, 그렇기에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는 마지막 진리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동양고전과 명리학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은 다르게 풀어냅니다.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내가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명예와 권력 (관성), 재물 (재성), 인간 관계 (비겁)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내 의지로 방향을 바꿀 수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응답할지는 선택할 수 있지만, 발생 자체는 내 뜻 밖에서 주어집니다.

공자는 이를 천명 (天命) 이라 불렀고, 50세에 이르러 천명을 알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몸조차 완전히 조절하지 못합니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고, 내일의 날씨조차 확실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불안한지, 왜 슬픈지도 종종 뒤늦게 깨닫습니다.
즉, 사람은 자기를 둘러싼 세계조차 완전히 통제하지도, 알지도 못합니다.


결국 인간이 가치를 두는 대부분의 것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온전히 주어진 것은 단 하나,
완전하지 않은 삶 속에서도 나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토대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를 선택하는 힘입니다.


톨스토이는 그 선택을 ‘사랑’이라 불렀습니다.
동양철학은 그것을 ‘순응과 분별의 지혜’라 하고,
정신분석은 ‘무의식과 화해하는 용기’라 말합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내가 억눌러온 감정, 성장기의 결핍, 이해받지 못한 상처가 삶의 한복판에서 나를 흔들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나’와 마주합니다.
그 만남이 두렵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거기서부터 진정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는 말합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도 서로를 돌보고, 낯선 이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사랑 때문에 다시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명리학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까요?
명리학에서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하늘(天)의 시간과 땅(地)의 기운을 받아 한 사람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기운은 늘 완전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너무 강하고, 누군가는 너무 약하며,
어떤 이는 찬 기운 속에 태어나고, 어떤 이는 너무 뜨거운 기운 속에 태어납니다.

그래서 명리학은 인간을 결핍된 존재로 봅니다.
완전함이 아니라 부족함에서 출발하는 존재, 하지만 이 결핍은 단순한 결함이 아닙니다.
그 결핍이야말로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동력이 됩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균형을 찾아가며 살아갑니다.
내게 부족한 것을 채우려 하고, 넘치는 것을 덜어내며, 스스로에게 맞는 ‘살아가는 방식’을 만들어갑니다.

명리학에서는 이를 ‘조화’라고 말합니다.
주어진 기운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스스로의 삶의 온도를 맞추며 살아가는 것.
누군가는 운이 도와주는 시기에 꽃을 피우고, 또 어떤 이는 고된 시간을 지나며 내면의 질서를 스스로 세워갑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가지지 못한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결핍을 메우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곧 사랑이고, 연결이며, 공생의 삶입니다.

그러니 명리학은 이렇게 답합니다.
사람은 완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기 때문에 사랑하며 살아간다.



[다시 한번,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없음 속에서 살고,
결핍을 품은 채 태어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명리학은 태어나는 순간의 기운을 읽지만, 그 기운은 ‘가능성’일 뿐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운명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사주 안에서 때론 용신을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결핍이 인간을 살아있게 만듭니다.

톨스토이가 말한 ‘사랑’은
명리학에서 말하는 ‘용신’과 닮아 있습니다.
애초부터 갖추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찾아가야 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자기 안에 있는 것과 자기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 사이에서 무엇으로 살아갈지를 매 순간 선택니다.

그 선택의 이름이 곧 사랑이고,
그 사랑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